2020년 5월 23 일 초하루법회
여법하신 삶
제14장 불타품(佛陀品)
己勝不受惡 기승불수악
一切勝世間 일체승세간
叡智廓無彊 예지곽무강
開朦令八道 개몽령팔도
이미 다스려 어떤 악도 받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겼나니
밝은 지혜와 식견이 끝이 없는 부처님을
누가 꾀어 그릇된 길로 이끌 것인가
☞마음의 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탐진치 삼독에서 이미 벗어났으므로 선과 악한 생각이 다하였으니 생할 것이 있어야 다함이 있을 것이므로 마음에 일체를 두지 않아서 악을 받을 것이 없는 것이며, 이 세상 모든 것을 이겼다는 것은 첫째는 자신을 바로 보아 자신의 실체에서 미혹되지 않음이며, 둘째는 선과 악에 물들지 않으니 밝은 지혜가 항상하며, 그 식견과 견해가 맑고 위없어 그 누구도 속일 수도 넘을 수도 없으니 누가 다시 성인을 그릇된 길로 이끌 수 있으며, 그 밝은 견해로 다시 미혹함에 들어갈 리가 없는 것이다.
【본문】스님께서는 모든 일을 진리에 귀일시키는 바가 워낙 빈틈없이 철저하시었고 사람들이 하찮다고 여기는 일에도 그러하셨으므로 제자들이 오히려 당황할 때가 있었다. 그러한 면모가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록 불변이셨으나 스님께서는 조금도 귀찮다거나 싫어하시는 기색이 없으셨다. 한 제자가 감탄조로 그에 대해 여쭙자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내가 진리를 그렇게 만들었느냐? 진리가 본래 그러하므로 내가 그러한 것뿐이다.”
☞큰스님은 이미 자신의 주인공에 의지하여 공부하였고, 그 실체를 체득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 묘용을 확증하여 더 이상 의심이 없으니 마음이 일어날 것이 없고 항상 진리 속에 있으니 변함이 없는 것이다. 주인공의 실체가 진리이며, 여기에 맡긴다는 것은 진리와 함께한다는 것이고, 그 텅빈 자리에서 모든 작용이 묘용인 것으로 다 되어지게 흘러가는 것이 진리인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어느 해에 신년 하례 좌석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받으시고는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복을? 난 복 많이 받으려고 이렇게 앉아 있는 게 아니다. 만약에 복 많이 받는다는 그런 착이 있다면 그 또한 인과를 짓는 게 아니겠느냐.” 스님께서는 일상의 보통 일에서도 대개 가르침이 이러하셨다.
☞진리의 눈을 뜬 사람에 있어 새해라는 것은 따로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진리의 당체인 주인공 자리는 항상 새해이므로 따로이 복을 받을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착이 되고, 인연의 고리가 되는 것이다.
【본문】한 제자가 스님 자신의 색신에 대한 느낌을 여쭌 적이 있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끔씩 나는 내 몸이 포대 자루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허름한 천으로 만들고 아무렇게나 취급하는 포대 자루 말이다. 그럴 때 나는 무엇을 먹어도 맛을 모른다. 또 좋고 싫은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니 보통으로 좋아할 일도 딱히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싫어할 일도 구태여 싫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고구마를 담으면 고구마 포대 자루가 되고 쌀을 담으면 쌀 자루, 고추를 담으면 고추 포대이듯 내 몸에 무엇이 들고 나든 전혀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인연 닿는 대로 주워 담다가 닳고 해지면 쓰레기장으로 갈 뿐이 아니겠는가.”
☞생사에 대하여 집착이 없으니 이 몸에 대하여 집착할 것이 또한 없는 것이며, 사대화합인 줄 아는 법인으로 생활과 지견이 하나이며, 그 하나까지도 없으니 그 어떤 것에도 착을 둘 것이 없어 몸을 포대취급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본문】스님께서는 남달리 소식에 소찬으로 견디셨다. 제자들이 늘 이를 안타까이 여겼고 신도들은 스님의 건강을 염려하여 자주 음식 공양을 올리곤 했다.
스님께서 여러 차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나마 먹지 않으면 이 체가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먹을 뿐이지 맛으로 먹는게 아니다. 한 술 떠 넣고 물 마시고는 그 생각에 젖어 다시 한 술 떠 넣고 그렇게 할 뿐인데 여러분들이 내게 좋은 음식 가져오면 오히려 부담이 되느니, 나는 중이 되어서 이날까지 절 받고 보시 받고 음식 공양 받아서 잘 지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스님께서는 신도들이 어떤 산해진미를 공양해도 조금 맛만 보시고는 그 자리에서 모두에게 나눠 주셨다. 그것을 보고 한 신도가 섭섭한 눈치를 보이자 스님께서 고즈넉이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먹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먹었으니 오죽 좋으냐.” 그 신도 분은 스님의 말씀에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했다.
스님께서 하루는 죽 공양을 드시면서 아무 말씀 없이 물을 타서 드셨다. 시봉 스님들이 무척 송구스러워하자 말씀하셨다. “너무 짜면 물 타 먹고 싱거우면 간장 타 먹는 것이 그대로 불법이니라.”
☞몸과 마음의 집착과 무명의 업에서 벗어난 무애인에게는 먹는 것이 또한 다를 것이 없어 다만 그 생활하는데 필요한 일부만을 그 음식으로 활요할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미에 대하여 애착을 두지 않으므로 짜면 싱겁게 먹고자 물을 타서 먹는 것이 자연인 것이고, 그것을 불법이라 하는 것이다.
【본문】스님께서는 진리의 곳간이든 재물의 곳간이든 거침없이 열어 베푸셨다. 그러고는 잊으셨다. 베풀고 나면 언제나 앞뒤가 끊긴 듯했다.
어느 날 한 객승이 시주를 청하였다. 스님께서는 공양주 보살을 부르시더니 두어 말 남은 쌀을 모두 시주하도록 이르셨다. 공양주가 내일 아침 공양거리를 걱정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없으면 들어올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 그날 밤 한 신도가 스님께 감사하는 뜻으로 쌀 두 가마니를 싣고 찾아왔다.
사람들이 그 일에 감탄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산으로 다닐 때에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준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먹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 하다못해 칡뿌리, 나무 열매라도 눈에 띄게 마련이었다. 한번은 추운 겨울에 신발을 잃어버려서 견디기 어려웠는데 첩첩산중에서 신발 한켤레 건네는 사람을 만난 일도 있었다. 그게 바로 진리이다. 한생각에 턱 맡겨 놓고 오늘을 싱그럽게 살아가면 된다. 자기 주인공을 믿고 거기에 맡겨라.”
☞몸과 마음에 집착을 벗고 인생의 굴레를 뛰어 넘어 장부가 된 것은 많은 세월을 통하여 주인공과 진리가 둘이 아님을 증득한 결과며, 한 생각 모든 것을 쉬어 모든 묘용이 갖추어진 것을 또한 체득하여서 재물이 유무에 있지 않고, 집착없이 자연에 돌아가는데 있는 것은 스님에 있어서는 너무도 당연하다 할 것이다.
◆진구품(塵垢品)
慧人以漸 혜인이점
安徐精進 안서정진
洗滌心垢 세척심구
如工鍊金 여공련금
지혜로운 사람은
꾸준하고 천천히 나아가면서
마음의 때를 씻어 버리네
마치 금을 다루는 사람이
금을 불리는 것과 같이
苟生無恥 구생무치
如鳥長喙 여조장훼
强顔耐辱 강안내욕
名曰穢生 명왈예생
구차하게 살면서 부끄러움 없어
못된 성질로 교만스럽게
얼굴 가죽 두껍게 욕을 참는 것
그것을 더러운 삶이라 하느니라.
【본문】스님께서는 세간의 물질적인 수요를 걱정하시는 일이 없었다. 실제로 선원 운영에서도 어려움에 봉착하는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제자들은 스님께서 법력을 발휘하여 그리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스님께서 이에 대해 말씀하셨다. “나는 주인공을 믿을 뿐이다. 될 일이면 되겠고 되지 않을 일이면 되지 않을 것이다. 되든 안되든 턱 맡기고 있으면 여법하게 되어 나갈 것이다.” 스님께서는 사사로운 작위에 마음을 두신 일이 없으므로 매사는 여법하게 이루어지곤 했다.
스님께서 어느 때 한 해외 지원에 이틀간 머무르시는 동안 일만 불의 보시금이 들어왔다. 마침 그곳의 청년 불자들이 마땅한 법회 장소가 없어 걱정하는 말을 들으시고는 선뜻 “작은 강당이라도 마련해 보라.” 하시며 보시금을 모두 내주셨다.
스님께서는 누구에게나 한번 일을 맡기시면 일체 관여하지 않으셨다. 간혹 잘못이 드러나는 경우라도 특별한 말씀이 없으셨다. 아홉 가지 잘못이 있더라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으면 그 점을 높이 사셨으므로 제자들은 늘 감복하였다. 꼭 말씀을 하셔야겠다고 느끼셨을 때는 간곡하게 타이르셨으므로 듣는 사람이 무척 송구스러워했다.
☞재물과 일에 있어서 완전하게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되어지는 도리를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며, 주인공의 도리를 확증한 스님에게서 천금을 한 번에 쓴다고 하여도 부족하거나 남음이 없는 것이고, 그 쓰임이 법도에 맞아서 모두가 그 혜택을 입어 모든 일체 중생이 그 가피를 입게 되는 것이다.
【본문】선원을 찾는 신도중에는 타 종교를 믿다 개종한 사람이 적지 않았고 십 년 이십 년을 기복 종교로 돌다가 발길을 돌린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이들일수록 선원을 찾기 시작하고부터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일상생활에서 이익 됨이 있었노라고 체험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대해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생명의 에너지는 항상 같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특별나게 내놓는 것이 있다고 하기 이전에 알게 모르게 오가며 같이 돌아가는 게 대공의 이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별스런 일이 있다 해도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주인공의 능력인 것이니 중요한 것은 굳건한 믿음이다.”
☞대공의 이치라는 것은 천지자연과 우주의 이치를 말하며 그 자리는 시공을 떠나 있으므로, 지금 이순간의 한 생각은 삼세를 관통해 있으며 공간의 구애가 없기에 여기는 우주 끝까지 울림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스마트폰의 주파수가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잡아 아무리 먼 거리를 소통하는 것과 같고 영상도 또한 그러하여 보고 듣고 하는데, 주인공 자리에 맡기고 묘용이 작용을 일으키면 걸림이 없어서 모든 것과 소통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묘용은 일체 의심이 없을 때 발현하는 것이고, 확신이 커지면 씀에 구애가 되지 않는 것이다.
스님께서는 인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버리지 않으셨고, 무한한 자비심을 보이셨고, 중생을 교화하는 일에 권태를 느끼지 않으셨고, 신명을 아끼지 않으셨고, 진실을 설하는 일에 피로를 모르셨고, 모든 중생의 고뇌를 대신하셨고, 공덕을 돌려 베푸셨다.
스님께서는 또 생사윤회에 두려움이 없으셨고, 그를 대함에 정원수를 관상하듯 하셨고, 명예나 욕을 당해도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으셨고, 이득을 뽐내지 않으셨고, 남의 즐거움을 보고 기뻐하셨고, 중생의 마음과 더불어 겸허하셨고, 다른 가르침을 봉행하는 사람과도 다투시는 법이 없으셨고, 이런 일에 항상 변함이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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